2009 필리핀 여름아웃리치 후기 6
등록일 | 2009-08-15
2009년 8월 필리핀 아웃리치 후기 – 김태정
필리핀을 떠나온지 일주일이 지나갑니다. 일을 하다가도 눈을 감으면 아직도 힐룽뚱안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Habitat” 이라는 작은 보트를 타고 건넜던, 그 밤의 바다가 보입니다. 엷은 구름에 덮여 달무리진 보름달은 은은하게 파도의 골짜기 가운데 길을 내고, 우리의 지척에는 높은 산처럼 물기둥들이 문득 솟아올라, 그 솟구치는 힘을 못이기는 포말이 그 산들의 정상에서 상어의 이빨처럼 하얗게 부서져 내리며, 우리 보트를 삼키려 했던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들이치는 파도가 우리 배를 지탱하며 헐떡이던 작은 경운기 엔진위에 부서져 내리면, 스파크 플러그엔 불꽃이 튀고, 엔진은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저는 엔지니어 입니다. 저의 생활은 치밀한 계산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 철저함이 요구되는 삶입니다. 지난 19년간 자동차를 만들면서, 또 작은 팀을 이끌면서, 기획을 하고, 목표를 수립하고, 계획을 세우고, 인원을 적재 적소에 배치하고, 그들을 리드하는 생활을 그 누구보다도 인정 받으면서 해 오고 있었습니다. 인정 받지 못하면 힘이 빠지고, 리드하지 못하면 화가나는 성격…… A형 소세지: 소심하고, 세심하고, 지랄맞다는 성격에 어울리는 삶을 살던 저에게 이번 필리핀 아웃리치는 전혀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경험이었습니다.
출발 공항에서부터 예상보다 많은 짐을 줄이려고 풀고 다시싸고…… 늦게 도착한 짐들에다, 포장도 되어있지 않은 많은 물품들, 수시로 바뀌는 물건 리스트들 등 우와좌왕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예측 못한 어려움들이 계획적인 삶이 편한 나에게 껄끄러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의 어려움은 필리핀에서 사역을 시작한 첫째날에도 이어졌습니다. 전혀 조직되어 있지 않은 업무 분장과 명확하지 않은 업무 지시가 당황스러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누가 언제까지 마쳐야 할 지를 계획한 것도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가까이 서 있는 형제 자매들이 일하는 방식! 마음이 어려워 지는 것 같아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다행히 둘째날에는 약간은 조직적으로 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힐룽뚱안에 들어가서 였습니다.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1000개가 준비되어 있어야 할 벽돌이 100개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폭풍우로 현지인들이 생산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팀들이 충분히 먹을 음료수도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부랴부랴 예정에 없던 방역을 하기위해, 장비와 약품, 모자란 음료수와 얼음등을 사러 다시 막탄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그 고생을 하며 섬까지 들어갔는데, 계획된 사역을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조급하고, 약간은 화도 난 마음으로 다시 힐룽뚱안으로 돌아가던 그 밤에 우리는 폭풍을 만났던 것입니다.
‘주님! 엔진이 죽지 않게 해 주세요. 엔진이 꺼지지 않게 유지해 주세요.’ 물맞은 엔진은 꺼져 버리면 다시 시동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 보다도 잘 알기에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배가 깨져서 익사하면 순교가 되는구나. 아내와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천국에 가겠구나. 선교사님께서는 이런 바다일 것을 알고서도 우리를 데리러 직접 오셨구나. 그냥 현지인들만 보내도 됬을 텐데, 직접 오시다니……’ 이런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파도처럼 부서질 때, 마음속에 들리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큰 파도를 부리는 것이 바로 나다. 너희의 생명을 주관하는 이가 바로 나다.” 마음이 갑자기 평안해 지면서, 나의 내면에서 아우성대던 많은 소리들이 일시에 조용해졌습니다. 그 동안 아웃리치에 대해 품고 있었던 불만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비로소 내 바로 앞에서 굳은 얼굴로 어두운 바다를 보면서 배를 조정하던 현지인에게 미소 지어줄 수 있었고, 앞에 앉아서 저를 보던 형제들에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 험한 바다를 무릎쓰고, 직접 데리러 오신 선교사님의 사랑과 열정도 마음속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지혜를 주셔서 밀짚모자로 엔진실에 들이치는 파도를 막게하셨고, 40분 거리를 두시간이나 걸린 후에 힐룽뚱안섬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섬에 도착하여 얕은 바다로 배를 밀고 갈때에 바닷속 반딧불을 주님께서 밝혀 주셨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 마다, 밟는 해초에서 빛이 났습니다. 마치 “네가 밟는 곳 마다 나의 빛을 비추어 주겠다”는 주님의 약속 같았습니다.
섬에 도착해서 모든 형제 자매들이 우리의 무사귀환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엔진이 죽어가다가 다시 살아나곤 했는지, 그 큰 파도에도 배가 부서지지 않았는지 그때에 알았습니다.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평소에는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저의 아내가 거의 울먹 울먹하면서 저를 야단치더군요. 이것 또한 저에게는 아내의 사랑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저의 일생은 내가 다룰 수 있을 만한 파도만을 이리저리 치면서 자신의 만족을 느끼려했던 이기적인 삶이었습니다. 내가 계획하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역시 인간 수준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계획한 것 보다. 기획한 것 보다. 훨씬 아름답고 놀라우신 일을 행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이번 아웃리치를 통하여 경험하였습니다. 높은 파도를 일으키시고,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권능이 우리를 섬겨 주신 장자교회 김목사님 내외와, 선교사님과 우리 모두의 인생위에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P.S. 그 밤에 구명 조끼를 입지 않으신다던 선교사님도 구명 조끼를 입고 계셨습니다. 오면서 선교사님께 제발 구명 조끼 입고 다니시라고 부탁드리고 왔습니다.
필리핀을 떠나온지 일주일이 지나갑니다. 일을 하다가도 눈을 감으면 아직도 힐룽뚱안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Habitat” 이라는 작은 보트를 타고 건넜던, 그 밤의 바다가 보입니다. 엷은 구름에 덮여 달무리진 보름달은 은은하게 파도의 골짜기 가운데 길을 내고, 우리의 지척에는 높은 산처럼 물기둥들이 문득 솟아올라, 그 솟구치는 힘을 못이기는 포말이 그 산들의 정상에서 상어의 이빨처럼 하얗게 부서져 내리며, 우리 보트를 삼키려 했던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들이치는 파도가 우리 배를 지탱하며 헐떡이던 작은 경운기 엔진위에 부서져 내리면, 스파크 플러그엔 불꽃이 튀고, 엔진은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저는 엔지니어 입니다. 저의 생활은 치밀한 계산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 철저함이 요구되는 삶입니다. 지난 19년간 자동차를 만들면서, 또 작은 팀을 이끌면서, 기획을 하고, 목표를 수립하고, 계획을 세우고, 인원을 적재 적소에 배치하고, 그들을 리드하는 생활을 그 누구보다도 인정 받으면서 해 오고 있었습니다. 인정 받지 못하면 힘이 빠지고, 리드하지 못하면 화가나는 성격…… A형 소세지: 소심하고, 세심하고, 지랄맞다는 성격에 어울리는 삶을 살던 저에게 이번 필리핀 아웃리치는 전혀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경험이었습니다.
출발 공항에서부터 예상보다 많은 짐을 줄이려고 풀고 다시싸고…… 늦게 도착한 짐들에다, 포장도 되어있지 않은 많은 물품들, 수시로 바뀌는 물건 리스트들 등 우와좌왕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예측 못한 어려움들이 계획적인 삶이 편한 나에게 껄끄러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의 어려움은 필리핀에서 사역을 시작한 첫째날에도 이어졌습니다. 전혀 조직되어 있지 않은 업무 분장과 명확하지 않은 업무 지시가 당황스러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누가 언제까지 마쳐야 할 지를 계획한 것도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가까이 서 있는 형제 자매들이 일하는 방식! 마음이 어려워 지는 것 같아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다행히 둘째날에는 약간은 조직적으로 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힐룽뚱안에 들어가서 였습니다.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1000개가 준비되어 있어야 할 벽돌이 100개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폭풍우로 현지인들이 생산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팀들이 충분히 먹을 음료수도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부랴부랴 예정에 없던 방역을 하기위해, 장비와 약품, 모자란 음료수와 얼음등을 사러 다시 막탄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그 고생을 하며 섬까지 들어갔는데, 계획된 사역을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조급하고, 약간은 화도 난 마음으로 다시 힐룽뚱안으로 돌아가던 그 밤에 우리는 폭풍을 만났던 것입니다.
‘주님! 엔진이 죽지 않게 해 주세요. 엔진이 꺼지지 않게 유지해 주세요.’ 물맞은 엔진은 꺼져 버리면 다시 시동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 보다도 잘 알기에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배가 깨져서 익사하면 순교가 되는구나. 아내와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천국에 가겠구나. 선교사님께서는 이런 바다일 것을 알고서도 우리를 데리러 직접 오셨구나. 그냥 현지인들만 보내도 됬을 텐데, 직접 오시다니……’ 이런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파도처럼 부서질 때, 마음속에 들리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큰 파도를 부리는 것이 바로 나다. 너희의 생명을 주관하는 이가 바로 나다.” 마음이 갑자기 평안해 지면서, 나의 내면에서 아우성대던 많은 소리들이 일시에 조용해졌습니다. 그 동안 아웃리치에 대해 품고 있었던 불만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비로소 내 바로 앞에서 굳은 얼굴로 어두운 바다를 보면서 배를 조정하던 현지인에게 미소 지어줄 수 있었고, 앞에 앉아서 저를 보던 형제들에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 험한 바다를 무릎쓰고, 직접 데리러 오신 선교사님의 사랑과 열정도 마음속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지혜를 주셔서 밀짚모자로 엔진실에 들이치는 파도를 막게하셨고, 40분 거리를 두시간이나 걸린 후에 힐룽뚱안섬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섬에 도착하여 얕은 바다로 배를 밀고 갈때에 바닷속 반딧불을 주님께서 밝혀 주셨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 마다, 밟는 해초에서 빛이 났습니다. 마치 “네가 밟는 곳 마다 나의 빛을 비추어 주겠다”는 주님의 약속 같았습니다.
섬에 도착해서 모든 형제 자매들이 우리의 무사귀환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엔진이 죽어가다가 다시 살아나곤 했는지, 그 큰 파도에도 배가 부서지지 않았는지 그때에 알았습니다.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평소에는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저의 아내가 거의 울먹 울먹하면서 저를 야단치더군요. 이것 또한 저에게는 아내의 사랑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저의 일생은 내가 다룰 수 있을 만한 파도만을 이리저리 치면서 자신의 만족을 느끼려했던 이기적인 삶이었습니다. 내가 계획하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역시 인간 수준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계획한 것 보다. 기획한 것 보다. 훨씬 아름답고 놀라우신 일을 행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이번 아웃리치를 통하여 경험하였습니다. 높은 파도를 일으키시고,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권능이 우리를 섬겨 주신 장자교회 김목사님 내외와, 선교사님과 우리 모두의 인생위에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P.S. 그 밤에 구명 조끼를 입지 않으신다던 선교사님도 구명 조끼를 입고 계셨습니다. 오면서 선교사님께 제발 구명 조끼 입고 다니시라고 부탁드리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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