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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모르는 세대에 임하는 재앙 2

등록일 | 2009-02-01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에 임하는 재앙 2 출 8:1~15 2009.2.1 바로는 나일 강이 주는 부를 믿고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세상을 지배하는 신 같은 존재임을 과시하던 바로를 재앙을 통해 바로 잡으려고 하셨습니다. 재앙은 인간의 교만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일주일 동안의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이런 바로에게 하나님은 또 다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1절) 하나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변함이 없습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하나님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장애나 저항도 하나님을 막을 수 없습니다. 포기해서도 안 되고,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그렇기에 바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도 하나님을 결코 이길 수 없었지만 바로는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세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강하게 거부하는 세력은 바로 인간의 신념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신뢰하는 것을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바로를 보십시오. 바로는 나일 강이 바로에게 풍요를 준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피 재앙을 통해 풍요를 죽음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런 신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려 주신 것입니다.  바로는 일주일 동안 피 냄새를 맡으며 인간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도 자신만만합니다.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개구리가 나일 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과 네 침실과 네 침상 위와 네 신하의 집과 네 백성과 네 화덕과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갈 것이며 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 (2~4절) 하나님은 기회를 주십니다. 그때 돌이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도 바로도 좋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데 바로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재앙이 시작됩니다.  ‘개구리’는 당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집안 곳곳에 개구리를 상징하는 물건들을 여기저기 두고 복을 빌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개구리를 공포의 대상으로 바꾸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들이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 아론이 애굽 물들 위에 그의 손을 내밀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5~6절) 애굽 땅이 개구리로 덮였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바랐던 것처럼 풍요의 신이 집안 구석구석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징그럽고 괴롭겠습니까. 아마도 애굽 사람들에게는 이 풍요의 신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본래 개구리는 나일 강 하구에 집단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애굽 전역을 덮었다는 것은 생태계가 무너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있어야 할 곳을 떠나온 개구리처럼 불순종은 삶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듭니다. 인간의 불순종은 삶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뒤죽박죽으로 만듭니다.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7절) 바로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세상적인 대안은 늘 똑같습니다. 어리석고 무지한 방법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개구리를 다시 살던 곳으로 보내야할 텐데, 오히려 더 많은 개구리가 올라오게 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 이상 인간적인 얕은 방법, 술수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지혜로운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8절)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바로는 하나님께 구해서 개구리를 없애달라고 합니다. 여러분, 기적을 보면 인정하십시오. 음성을 들으면 받아들이십시오. 알면 행하십시오. 포기해야 할 것이 있으면 포기하십시오. 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하십시오. 그래야 삶에 질서가 잡힙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욕심과 헛된 고집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따르는 것이 맞습니다. 위기의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전하게 반응하십시오.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 나일 강에만 있도록 언제 간구하는 것이 좋을는지 내게 분부하소서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9~10절) 모세는 개구리를 언제 떠나게 하는 게 좋을지 바로에게 묻습니다. 바로가 왕이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신실하지 못한 바로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여호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기’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정은 바로가 하는 것 같지만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이신 것을 체험토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요, 그것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내 의견을 물으실 때 우리는 즉각 하나님의 도움을,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어떻게 되겠지’, ‘시간이 약이다’는 식의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바로를 보십시오. 바로가 왜 ‘지금 당장’이라고 하지 않고 ‘내일’이라고 했을까요? 어쩌면 오늘 밤 개구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인간은 응답을 받고도 즉각 순종하지 않고 미룰까요? 하나님을 거부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뒤로 미루고 싶은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미련하게도 ‘미련’이 많은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개구리가 왕과 왕궁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떠나서 나일 강에만 있으리이다 하고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떠나 나가서 바로에게 내리신 개구리에 대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11~14절) 개구리가 죽었습니다. 이제 재앙은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온갖 요행수를 바라며 술수를 부리는 인간일지라도 자비를 변함없이 베푸십니다. 다시 무너진 삶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또 다시 인간입니다.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15절)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 바로는 다시 불순종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인간은 죄를 짓고,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비 앞에서 인간은 다시 교만해 집니다. 자비를 잊고, 고통을 기억 못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강퍅해 집니다. 숨을 쉴 수 있을 때 사단은 우리를 다시 교만한 자리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7~10) 내가 약할 때가 가장 강할 때입니다. 내가 약한 그 때가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클 때입니다. 사도 바울은 경험적으로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약하고 겸손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큰 능력임을 고백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겸손해야 합니다.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기에서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강 같은 자비가 내 삶에 임할 것입니다. 
2008-11-02
2009-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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